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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한국 메이크업의 역사

근대 개화기 ~ 현대

by sol솔- 202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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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대 개화기

개항 이후 우리나라는 문화적으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다. 일본 중국에 치중하던 외교정책이 유럽 열강들의 문호 개방 요구에 따라 개항 이후 서구 화장품과 화장법의 도입으로 재래식 화장품과 화장법도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920년대에는 유럽 수입선의 크림, 백분, 비누, 향수 등을 국내에 들여와 재래식 화장품보다 포장과 품질이 우수하고 사용이 간편하므로 수입 화장품이 많은 인기 끌었다. 신식화장품의 도입은 신식화장법으로 발달하여 입술, 연지의 색깔이 진해지고 향수와 비누의 향이 진해졌다. 종래의 쪽 찐 머리는 파마머리로 바뀌고, 치마와 소매의 길이가 짧아졌다.
뾰족구두와 양산을 받친 신여성이 등장하였다. 특히 이 시대에 있어서 유행이란 것은 일종의 문화적 특권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전통적인 사회에 대한 이질적인 문화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따라서 조선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일탈적인 행동양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시대의 화장, 옷차림은 사회적 규범에서 어긋난 사람 내지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사회적 집단을 형성한 사람들 주로 신식여성과 기생 및 카페걸, 다방 마담, 영화배우에 의해서 먼저 유행되었다. 일부 여성들의 자유연애 예찬과 이에 대한 비난으로 신식 화장을 한 여성들은 바람둥이 또는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여염집 여성분은 그들과 구분되기 위해서 더욱 화장을 기피함으로써, 종래 기생 화장과 여염집 여성의 화장 구분이 뚜렷한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서구의 성 해방적인 시작의 출현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화장품의 본격적인 대량생산과 광고 등을 통해서 우리의 미에 대한 기준이 서구화되어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6. 현대

1) 1940년대

1945년 해방을 계기로 서양 문물이 대거 몰려들었으며 퍼머넌트의 유행으로 일반여성들도 퍼 머, 세팅, 아이롱으로 웨이브를 내어 멋을 내었다. 1948년에는 서울시 위생과의 관리하에 미 용사 자격시험이 제정되었다. 화장에 있어서는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 나가 있던 사람들의 귀국으로 인하여 기초 미용 마사지법이 국내에 보급되었다.

2) 1950~1960년대

국내 화장품 산업은 위축되고 미국의 영향으로 밀수화장품이 국내 화장품을 주도하였다. 기초화장품 사용에 있어서는 콜드크림의 보급으로 윤기가 흐르고 번들거리는 화장법이 유행하였다. 또한 외국영화의 수입으로 오드리 헵번 화장의 영향을 받아 피부 톤을 밝게 하고 눈썹을 두껍고 진하게 그리고 아이라인을 길게 빼서 그려줌으로써 눈매를 강조하였다.

3) 1970년대

고도의 경제 성장과 신문• TV • 잡지 등의 매스미디어의 보급으로 패션과 메이크업이 보편화 대중화 되었다. 또한 화장품 업계도 활기를 띠었으며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었다. 많은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하여 메이크업이 대중화되었다. 1971년에는 국내 최초로 메이크업 캠페인이 실시되어 메이크업의 필요성을 부각하고 색조 화장 계몽에 기여하였다. 투명한 피부화장에 가늘고 긴 눈썹 아이섀도는 핑크, 보라색을 사용하여 둥글고 깊은 눈매와 볼연지 화장으로 여성미를 더해주었다.

4) 1980년대

CNP가 상승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되어 외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교복 자율화와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하여 생활문화 수준이 향상되면서 각자의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다.
컬러 TV 보급과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색채의 사용이 다양해지고 뚜렷해졌다.
1980년대 초반에는 색감이 진하고 눈 주위를 강하게 표현하며 디스코의 영향과 함께 펄이 들어간 메이크업으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운반에 들어 오존층의 파괴가 주된 사회문제화 되면서 색채보다는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게 되어, 에콜로지 경향과 함께 자연스럽고 청초한 메이크업이 부각되었다. 88 올림픽쯤에 아침 방송의 시작은 여성들에게 시사 교양, 미용 전반에 관심과 호응을 증가시키며 여권 신장과 여성의 미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켰다.

 

5) 1990년대

과학과 산업의 급속한 발달과 고학력 여성의 사회진출이 지속해서 증가하면서 캐주얼한 패션의 착용인 증가 하였고, 또한 경제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한 영향으로 획일적인 삶을 버리고 개인 중심의 성향을 보이는 감성세대의 등장으로 생활 패션의 변화에 따른 화장품에 대한 요구도 고급화, 다원화되었다. 특히 패션에 민감한 젊은 층은 개성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하여 색조 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6) 2000년대

희망적인 신세기를 맞이하는 분위기가 넘쳐나 화려하고 다양한 멀티컬러 그룹이 부각되었다. 멀티컬러란 어느 한두 컬러만이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질감, 다양한 색상, 다양한 톤을 지닌 컬러 군들이 한꺼번에 부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매트, 펄, 글로시 등의 질감과 선명한, 브라이트, 뉴트럴 등의 컬러 톤의 변화, 핑크, 민트, 블루 바이올렛, 라벤더, 오션 블루 등의 다양한 컬러 군이 나타나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메이크업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주름, 미백 등에 관심이 증대하면서 젊어지고 싶은 욕망으로 인해 기능성 화장품이 더욱 강화되며 복고풍의 유행과 맞물려 옛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한방화장품의 인기가 상승하였다. 나아가 고도의 과학을 앞세운 메디컬 브랜드 대 순 식물성을 표방한 자연주의 브랜드가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본다. 2000년 7월에는 화장품법을 기존의 약사법에서 분리하고 기능성 화장품의 개념을 세계 최초로 도입하였다. 한편 요즘은 반영구 화장이나 예쁘고 긴 속눈썹을 가져보길 원했을 여성의 심리를 파악해 '속눈썹 연장술' 등도 등장하였다. 아울러, 오늘날 메이크업의 유행 현상은 맹목적으로 유행을 따르는 스타일이라기보다 유행 안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에 따라 독특한 메이크업과 패션을 추구하는 경향이 반영되어 특별한 유행 스타일이 없고, 여러 가지 스타일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공존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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