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940~1949
1930년대의 경기침체에서 조금씩 벗어날 무렵 유럽에서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문명 파괴가 더욱 심하였다. 전쟁으로 물자가 귀하고 경제가 침체되었으며 사회적으로 불안 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여성들은 전쟁으로 인하여 산업전선에서 일하였으며 전쟁의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경제권을 가지면서 메이크업과 패션, 헤어 스타일에 대한 흥미와 노력은 계속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화장품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화학 약품점에서 재료를 사다가 직접 집에 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암시장에서 만든 화장품은 납 함량이 높아 사용 시 얼굴에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종류의 크림은 기름기가 없어서 가루가 날렸다. 전쟁 중인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의 뉴욕은 매혹적인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과 세련된 패션 등 새로운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전쟁의 어지러운 시기에서도 사람들은 더욱더 영화에 열중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미국의 할리우드는 더욱 그 입지를 굳혀갔다.
패션
이 시기는 남성적인 테일러 슈트가 여성복으로 정착되었으며, 옷의 기능성을 중요시 하였다. 신비스럽고 우아한 스타일 대신에 군수품 공장의 힘든 노동에 걸맞은 강한 얼굴이 새로이 등장하였고 패션도 군복의 영향을 받아 각진 어깨를 가진 X자형과 남성적인 슈트가 이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상의 재킷은 어깨가 넓고 길었으며, 치마 길이는 다소 짧았다.
여성들의 평상복은 좀 더 짧아지고 심플해지면서 기능성과 실용성을 겸한 스타일을 즐겨 입었다. 1940년대에 가장 눈에 띄는 패션 현상은 10대들의 패션 문화가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10대들의 패션 경향은 발목까지 오는 흰색 양말과 쐐기 굽의 샌들. 퍼프소매가 달린 블라우스, 직선형의 치마, 바지 끝이 말려 올라간 청바지와 운동화 등 주로 평범하고 경쾌한 스타일이었다. 지금까지도 청바지는 주로 노동자 복으로만 입혀졌으며, 소녀들도 주로 운동이나 놀이를 할 때 진(Jean)을 입었다.
헤어
고전미를 강조한 복고풍이 다시 유행하였고,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한 레이어 머리와 중간 길이의 머리를 위로 빗어 올려 묶는 스타일이 나타났다. 또한 머리 길이도 조금 짧아진 스타일이 유행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스타로서는 잉그리드 버그만, 리타 헤이워드, 에바 가드너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여성스러운 모습보다는 다소 강한 인상으로 남성적인 매력을 발산했다. '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영화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은 앞머리는 아이롱으로 컬과 웨이브를 충분히 주고, 뒷머리는 적당히 빗어 넘긴 여성스러운 멋을 낸 헤어스타일을 보여주었다. 1940년대에는 머리 모양을 되도록 작게 보이고자 머리카락을 머리 꼭대기에 있는 쪽 찐 머리 안으로 부드럽게 빗어 넘기고, 한쪽으로 빗어 말아 올렸다.
모자는 더욱 작아졌고 더 부드러운 모양이었으며, 군용 모자의 영향을 받아서 부풀린 베레모가 유행하였다. 금발이나 빨간색으로 머리 염색하는 것이 매우 인기 있었다. 또한 뉴 에드워드 스타일'의 등장으로 퐁파두르 스타일이 다양한 스타일로 창출되었으며, 승리에 타레'로 불리는 머리카락을 머리둘레에 계속해서 돌려 모양을 만드는 스타일이 여러 해 동안 유행했다.
메이크업
1940년대에는 전쟁 중인 군인들의 영향을 받아 남성들에게는 성적 매력이 있는 여성들의 이미지가 이상적인 스타일로 등장하였으며, 육체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의 이상적인 여성들을 가리켜 성적 여신이란 말로 불렀다.
영화배우 중에는 리타 헤이워드, 존 크로포드, 캐서린 햅번이 이 시대의 강한 이미지를 나타내는 메이크업으로 대표적이다. 메이크업 도 가늘고 신비스러운 긴 눈썹 대신에 두껍고 또렷하게 곡선적인 형태를 띄는 눈썹으로 관능적이면 서도 생동감을 표현하였다.
또한 그 이전의 뚜렷한 입술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에서 벗어나 두툼하고 여성적인 곡선 형태로 입술을 크게 그려 풍만해 보이며 반짝거리는 빨간 입술이 유행하였다. 눈썹은 아이펜슬로 눈꼬리 부분을 치켜올려 표현한 눈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눈꼬리를 강조하는 메이크업은 50년대에 걸쳐 지속해서 유행되었다.
6.1950~1959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50년대에서 60년대는 문화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지며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냉전체제에 들어간다. 대중음악인 로큰롤이 크게 유행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새로운 대중의 우상이 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또한 컬러 영화, TV, 카메라 가 등장함으로써 컬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전쟁 중 화학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화장 품이 개발되면서 눈썹 화장용 연필이 널리 사용되었고, 미국 할리우드의 영향으로 색조 화장을 위한 아이섀도와 여러 가지 색상의 립스틱도 등장했다. 전쟁 동안 여성들은 남성들 대신에 사회활동에 참여하여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오면서 가정적이고 모성적이며 순종적인 여성을 이상형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따라서 여성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남편감을 만나는 것이며,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패션과 메이크업이 여성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성숙하고 우아한 이미지의 여성을 나타낼 수 있는 패션과 메이크업이 유행하였다.
패션
1950년대의 패션계는 '크리스챤 디오르‘ 가 중심이었다.
전후 1947년 봄, 파리의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오르가 발표한 ’뉴룩'을 시작으로 전쟁 동안 제복 스타일로 남성화되었던 복식에서 여성의 우아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스타일로 변하였다. 51년 S/S에 오벌 라인을, F/W에는 롱라인을 발표하였으며 52년 S/S에는 수풀 라인을 발표하였다. 여성을 포장하는 듯한 형태의 라인이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또다시 브래지어와 코르셋을 착용하게 되었고,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우아하고 보수적인 몸에 꼭 끼는 테일러드 스타일의 정장이 유행하였다. 또한 과감한 귀걸이와 검은색 옷에 긴 진주 목걸이도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에 걸쳐 크게 유행했다. 50 년대 여자 복식에서 또 다른 변화는 남녀평등으로 인하여 가치관이 변하면 서 여자들도 바지를 일상복으로 착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퐁 스타일의 테드보이즈가 유행하였다. 여성스럽고 우아스러운 분위기가 바뀌어 점차 젊은 층과 노동자 계층이 등장하면서 오토바이를 타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검은색 가죽바지, 재킷과 부츠 등이 유행하면서 '영 패션‘ 이 등장하였다. 또한 폭이 좁아지는 캐쥬얼 스타일의 바지와 심플한 블라우스를 즐겨 입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