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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메이크업/중세시대 ~ 바로크시대

서양 메이크업의 역사 (중세시대~바로크시대)

by sol솔- 2024.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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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 바로크시대 

 

4. 중세 시대

중세는 5세기말 서로마가 멸망한 시기부터 15세기 동로마가 멸망한 약 1000년간을 말한다. 중세 초기 메이크업은 그리스철학과 로마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적 금욕주의 사상으로 금기시되었다. 메이크업을 한다는 것은 신이 주신 자기 본연의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는 것으로 악마의 모습으로 간주되어. 메이크업을 음탕함과 매춘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중세 중기(11~12세기: 로마네스크) 십자군 전쟁(11세기말~13세기말) 이후 동양에서의 문물이 전해지고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화장 품과 메이크업에 대한 관심이 점차 되살아났다. 특히 이 당시의 여성들은 과도한 출산 등으로 인해 빨리 노화되었으며, 메이크업은 이러한 노화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여성이란 점은 여성과 동일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중세 말기(13~14세기: 고딕 시대) 당시 여성들은 그리스나 로마처럼 창백한 피부, 넓은 이마, 갈색 아치형의 눈썹. 장밋빛 작은 입술, 가지런한 손톱을 가진 여성이었다. 중세 여성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관점은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고정관념에 의해 극히 제한되었고 이 시대 여성들의 모습은 흰색의 납 가루를 이용해 창백한 얼굴을 표현하고 그 하얀 피부 위에 붉은색으로 볼과 입술화장을 하였다. 또한 그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당시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대 한 기준은 과거와는 달리 눈을 강조하기보다는 원래의 눈썹을 밀어버리고 새로운 고전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눈썹은 아주 가늘게 그리고 그 형태는 편안한 곡선으로 올라가게 그린 후 직선 형태로 내려가게 그렸다. 아이라인은 블러셔와 동일한 색조를 사용하여 가늘게 그려 눈에 크게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하였다. 전 체적인 색조는 밝고 부드러운 색을 선호하였으며, 얼굴 전체를 깨끗이 면도하고 머리 또한 이마 뒤로 넘겨서 이마를 강조하였다. 개인적 취향과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메이크업을 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동양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동양의 영향을 받은 화장품들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상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규범이 있고 그것을 찬미하는 한편, 메이크업 여성에 대한 끊임없는 혐오 풍조도 계속 이어지는 이중성을 보였다.

5. 르네상스 시대 



르네상스 시대는 서구시민 사회가 형성되며, 중세에서 현대로 변천해 가는 풍부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자유성과 인간미가 가미된 전체적인 조화를 중요시하였다. 창조성과 조화를 강조하였으며, 확실한 표현예술을 강조하였다. 새롭게 해방된 여성과 남성들은 개인적 장신구의 새로운 수단 실험을 했다. 화장품과 메이크업은 비난 없이 공공연하게 사용되었지만, 때때로 종교적 광신자들은 이러한 것을 근절하려 하였다. 15세기 초 메이크업은 이탈리아 여성을 중심으로 눈 주위 위에 색조 화장을 하고 치아에도 하였으며, 중반 이후 메이크업은 이탈리아 여성들을 중심으로 다른 나라로 퍼져 나갔다. 여성들은 넓은 이마를 드러내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눈썹과 헤어라인을 깎아내고 머리를 뒤로 넘겨 장식하여 이마를 더욱 넓게 보이게 하였다. 또한 화장품과 향수를 사용했지만 입술, 뺨, 눈에는 너무 진한 색을 피하였고, 눈썹은 가늘게 잘 다듬었다. 눈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으며 연한 색조의 입술과 뺨을 보여주고 있다.

6. 바로크 시대

바로크의 어원은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르네상스의 고전적인 균형, 조화의 세계에 비하여 유동적이고 강렬한 남성적인 감각과 더불어 기묘하고 이상한 이미지가 강조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17세기에는 예술의 발전, 종교개혁, 자본주의의 출현, 식민지 개척 등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개 인주와 향락주의로 흐르면서 쾌락과 사치를 추구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과도한 장식과 메이크업이 유행한다. 특히 유럽 왕실과 상류 귀족의 여성과 남성들은 거의 모든 열정을 외모 가꾸기에 쏟아부었다. 특히 이 시기에 있어서 메이크업은 사교를 위한 필수적인 요건으로써 사용되었다. 또한 지나친 메이크업이 강한 도덕주의에 대한 해방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패치라는 새로운 장식 기법이 널리 유행되고 발전된 시대로 패치란 별, 하트 등 각양의 모양을 얼굴에 붙이는 것으로서 원래 16세기말부터 등장하기 위해 시작하였으나 17세기에 이르러 널리 유행되었다. 루이 14세 때에 이르러서는 상대방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이 시대에는 여자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메이크업을 하였고 이 시대의 특징은 진한 메이크업을 하여 백랍으로 만든 인형처럼 보였고, 깨끗하고 밝게 강조한 눈썹, 뺨의 위치보다 약간 밑에 홍조를 띠거나 붉은 연지를 칠하고, 모양과 색깔이 장미꽃 같은 입술, 살이 찌고 둥근 얼굴을 선호하였다. 몸 냄새를 감추기 위해 강한 향수를 사용하였으며 루이 13세 시대에 프랑스 상류사회나 궁전의 풍속 가운데에서 가발이 등장하여 화려한 의상과 조화되어 매우 중후하고 거창한 형태로 변화하였다. 17세기 초에는 남자는 앞머리를 앞이마까지 내리고 긴 머리를 어깨까지 자연스럽게 길러 꼬불꼬불한 머리를 빗으로 손질하고 인위적인 가발이 등장하여 머리를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하였다. 여자들은 가발을 사용해서 머리를 높게 빗어 올려 보석과 진주가 붙은 아름다운 핀을 꽂았다. 귀부인들은 머리카락을 여러 가지 색의 분을 뿌려 착색을 하였고 머리를 높게 하기 위해 이를 포마드로 고정시켜 각종 향수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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